작품세계
토우 박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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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사제리에서 태어나 흥업초등학교, 원주중학교, 대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제1회 시화전을 열며 시(詩)에 흥미를 가진 박건호는 흥사단 운동에 참여하여 민족혼을 노래하기도 했다. 인생을 달관한 중년의 글과 같은 그의 시는 “영원의 디딤돌”을 딛으려고 끊임없이 달려갔다. 서울로 올라가 1969년 미당 서정주의 서문이 실린 첫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냈다. 장인성 시인은 그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감성이 참으로 고운 사람이다. 순발력도 뛰어나다. 언젠가 미당 서정주 시인이 박건호를 보고 싶다고 해서 남현동으로 불렀는데 어린 소나무 한 뿌리를 들고 왔다. 초대받아 오다보니 빈손이어서 이 앞의 소나무를 뽑아왔다 한다. 지금은 주인도 없는 미당 서정주 시인 집 대문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박건호는 한동안 시인의 길을 등지고 노랫말을 쓰게 된 동기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의 노랫말에 깊은 울림이 있는 것도 시적감성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1972년 박인희가 부른 〈모닥불〉의 가사를 쓰면서 작사가로 데뷔했다. 평범하게 쓰이는 일상적인 언어를 새롭게 소화해 친근하면서도 시적인 언어로 가사를 쓴 그는, 대중가요라지만 뜨겁게 앓고 있는 격정적 사랑과 삶의 이야기들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그려냄으로써 당대 최고의 작사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12월 9일 박건호 선생은 오랜 병마와 싸우다가 타계하셨다. 자신의 목숨보다 시를 더 사랑한 진짜 시인. 일찍이 고려의 대문장 이규보(李奎報)가 시마(詩魔)에 걸려 죽게 된 것을 한탄하더니 박건호선생 역시 시 쓰기에 미쳐 자신의 건강은 뒷전이었다. 그 결과 이 시대를 함께한 글쟁이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방대한 량의 시와 노랫말을 남겼으니 결코 동방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이규보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도 열심히 시를 쓰고 있을 터이지만, 우리가 읽어볼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